제 726 호 [영화로 세상보기] 뮤지컬 영화가 주는 여운,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로 세상보기] 뮤지컬 영화가 주는 여운, <인생은 아름다워>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2022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한국 뮤지컬 영화이다. 2022년 9월 28일 개봉하여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연상되는 가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엄마 세연이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잘 챙겨주고 싶은 세연의 속마음은 아무도 몰라주고 무뚝뚝한 남편 진봉은 모든 짜증을 세연에게 내고, 고3 아들과 중학생 딸은 엄마에게 투정과 짜증을 부린다. 현대 사회에 너무나도 익숙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생활을 벗어나 떠나고 싶은 세연은 남은 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살면서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이루고자 한다. 세연의 가장 이루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는 첫사랑을 다시 찾는 것인데, 아내가 시한부라는 것을 알게 된 진봉은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첫사랑을 함께 찾으러 간다. 전반적인 내용은 세연의 첫사랑을 찾는 것이지만, 그 사이에서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 남편 진봉과 아내 세연이 사랑한 옛날 모습도 보여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또한 한국인의 감성을 저격한 옛 음악과 아름다운 장면의 조화는 영화를 더욱 몰입해 볼 수 있게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음악으로는 김광진의 편지,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 익숙한 노래여서 가사를 더욱 곱씹어 보게 하고,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 노래를 따로 듣게 되어도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되곤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은 가을, 겨울 계절에 이 영화의 OST인 하현상의 ‘Deep In Your Eyes’를 들으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특히나 우리와 나이대가 비슷한 자식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경우, 가족의 시한부 판정을 알게 된 후 느끼는 감정과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뮤지컬 영화라 대사 중 갑작스레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나와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뮤지컬 영화라서 주는 여운과 감동이 있기에 다가오는 연말에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그저 슬픈 영화가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고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 삶과 죽음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모든 순간의 소중함 등 여러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정달희 기자
제 726 호 [뮤지컬로 세상보기]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담다, <프리다>
[뮤지컬로 세상보기]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담다, <프리다> ▲ 뮤지컬 <프리다> 올해 8월부터 10월 15일까지, 약 두 달 반 동안 국내 뮤지컬 제작사인 ‘EMK’의 네 번째 창작 뮤지컬인 <프리다>가 다시 한번 막을 올렸다. 뮤지컬 <프리다>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생을 녹여낸 작품으로, 일반적인 뮤지컬의 형식과는 다르게 ‘last night show’라는 테마를 갖고 토크 쇼의 리허설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쇼 자체가 그녀의 인생이고, 리허설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배우는 오직 여배우 4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는 것 역시 다른 뮤지컬들과 차별화된 특징이다. 작년에 본 극이 초연으로 막을 올렸을 당시엔 큰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점차 회차가 거듭되고 입소문을 타가며 마지막 공연에 가까워질수록 회전문 관객(한 극을 여러 차례 보는 관객)들도 늘어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던 만큼 올해 1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많은 뮤지컬 팬이 기뻐했다. 극의 주인공인 ‘프리다’ 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은 각각 ‘레플레하’, ‘데스티노’, ‘메모리아’이다. 우선 ‘레플레하’는 프리다와 함께 토크 쇼를 진행해 주는 인물로, 토크 쇼 중 프리다의 인생을 나타내는 데 있어선 프리다의 남편인 ‘디에고’의 역할도 같이 소화하는 감초 같은 역할이다. ‘데스티노’는 이름부터 운명이라는 영어단어인 데스티니와 비슷하듯, 프리다에게 여러 운명과 선택의 기회를 던져준다. 삶이 괴로운 그녀에게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하지 않겠냐며 죽음을 제안하고 가혹하리만치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메모리아'는 고통으로 가득했던 프리다의 삶에 희망을 준, 그녀가 본 ‘평행우주의 완벽한 또 다른 프리다'의 역할이다. 그녀가 좌절하거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설 때면 나타나 프리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메모리아의 역할이다. 2022년에는 ‘프리다’ 역에 최정원, 김소향 배우님이, ‘레플레하' 역에 전수미, 리사 배우님이, ‘데스티노’ 역에 정영아, 임정희 배우님이, ‘메모리아' 역에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 배우님이 캐스팅되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올해는 작년에 함께한 김소향, 전수미, 리사, 정영아, 임정희,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 배우님뿐만 아니라 ‘프리다' 역에 알리, 김히어라 배우님, ‘레플레하'와 ‘데스티노', ‘메모리아' 역에 각각 스테파니, 이아름솔, 박시인 배우님이 합류하여 더 알차고 색다른 분위기의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 2023 뮤지컬 ‘프리다’ 캐스팅 (출처: EMK 뮤지컬컴퍼니) 프리다의 생애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통'이 아닐까? 프리다의 삶에는 세 번의 큰 고통이 있었다. 첫 번째 고통은 6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 일찍이 다리의 성장이 멈춘 것이다. 또래 친구들이 곧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모두가 그녀를 ‘나무다리'라며 멀리했다. 프리다는 유난히 짧은 다리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 긴 부츠를 신기도 해보았지만, 사계절 내내 날씨가 후덥지근한 멕시코에서는 되레 이상해보일 뿐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10대는 찾아왔고, 첫사랑도 생겼다. 그 당시의 여자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프리다는 사진가셨던 아버지의 열린 사고방식으로 해볼 수 있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진학해 만난 첫사랑인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와 함께 미래를 꿈꾸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아리아스와 함께 귀가하던 도중, 타고 있던 버스에 큰 사고가 난 것이 그녀의 두 번째 큰 고통이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고 피범벅이 돼 의사조차도 장담할 수 없던 대수술이었음에도 그녀는 무언가 세상에 남아 큰 할 일이라도 남은 듯 목숨을 부지했다. 수술을 마치고 그녀가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오른손’ 뿐이었다. 프리다의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그녀에게 천장에 거울을 달아주었고,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며 제안해 주셨다. 아버지를 따라 종종 사진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해오던 그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그녀는 사고 후유증으로 차게 된 코르셋과 지게 된 목발을, 갑옷과 검처럼 살겠다며 당당하고 굳세게 ‘코르셋’이라는 넘버(뮤지컬의 노래를 칭하는 용어)를 부르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 후로도 수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병원비를 부담하느라 집안 세간살이를 전부 파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그림'을 생업으로 삼아도 될지 고민이 돼 멕시코의 국민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다. 디에고 리베라와 그녀는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넘버 중 하나인 ‘허밍버드'에서 묘사되듯 계급을 싫어하고 인간의 평등을 믿으며, 원주민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한다는 점이 특히나 그랬다. 디에고의 사상과 그림은 곧 프리다가 꾸던 꿈이기에 그녀에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디에고 역시 프리다의 강인함과 열정에 매료돼 이성으로서 관심 두게 되었다. 당시 디에고는 비록 두 번이나 이혼을 한 남자였고, 프리다보다 21살이나 많았지만 머지않아 프리다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이제는 행복만 남은 줄 알았던 그녀의 삶은, 한 번의 유산으로 살짝 기울게 되고, 바람기가 다분했던 디에고가 프리다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소외와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세 번째 고통을 겪게 된다. 이처럼 차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모두 겪은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를 외치는 인물이다. 극의 줄거리는 그저 프리다의 생애이지만, 고통에 직면해 때론 현실과 타협하거나 체념하고, 때론 극복하는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배우의 연기와 노래, 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뮤지컬을 봐야만 하는 이유이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프리다'를 보며 자신을 투영해 볼 수도 있고, 그녀의 위대함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고통이 스토킹해도 두려워 말고 한 잔 가득 샴페인을 따르라!’는 가사가 담긴 그녀의 노래 ‘Lavida(인생)’는 관객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뮤지컬이 다 그렇듯, ‘프리다' 삼연이 언제 돌아올지는 부지기수다. 다만, 많은 관객의 사랑으로 초연과 재연 사이의 공백이 짧았던 만큼, 삼연도 머지않아 돌아오지 않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멋진 장면들과 연기, 노래로 가득한 ‘프리다', 뮤지컬을 처음 보는 관객들이더라도 지루해하지 않고 볼 수 있는 115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지닌 극이다. 이 기사로 결말이나 뮤지컬 자체가 궁금해진 학우들이 있다면, 언젠가 ‘프리다'가 돌아올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러 한 번쯤 보러 가길 강력히 추천한다. 이 자체로 충분해 완벽한 극, 상대적으로 시간과 금액의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최고의 극을 꼽자면 단연 ‘프리다’ 뿐일 것이다. 이채윤 기자
제 726 호 [교수사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으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최근에는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진 세상 탓이다. 책 읽고 토론하는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간다”와 관련한 말을 한 학생에게 설혹 그렇더라도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자 ‘그 잃어버린 20년 동안’이 바로 자신들이 생산 활동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하였다. 언제나 어느 시대나 장밋빛 인생이 마냥 기다리지는 않지만, 지금의 우리 학생들은 더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직시한 순간이었다.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알 수 있는 수치가 있다. 올 9월쯤에 여러 뉴스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3년 하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를 보도하였다. 올해 대졸 신규채용 예상 경쟁률은 평균 81 대 1이라고 하였고, 작년에는 77 대 1이었다고 하였다. 학생들에게 어떤 준비를 해서 어떻게 취업하라고 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이렇게 현실이 팍팍하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현실이 팍팍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팍팍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팍팍한 세상이니 도전도 해 보지 않는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 팍팍한 세상이지만 원하는 목표를 세워서 도전하는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면 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한다. ‘나는 무엇을 왜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고 자신의 목표를 세워 보기를 권한다.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잘 관찰하고 살펴보라는 의미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를 찾기 어려우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자신의 목표를 세웠으면 실천하기를 주저하지 말고 그 과정에서 작은 성취를 맛보았으면 한다. 목표는 멀리 내다보며 장기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 그러나 처음 부터 너무 큰 목표를 설정하면 실패의 가능성이 많아 쉽게 포기하게 된다. 눈앞의 목표를 작은 것으로 세우고, 그 하나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해 보았으면 한다. 성공의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달콤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실패를 연속으로 경험하다 보면 잘하는 사람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감이 생기고,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도전을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작은 성취라도 이루어 성취감을 맛본 사람은 다음을 생각하고 또 도전할 수 있는 내적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 실패를 겪으면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우선은 실패를 겪으며 생기는 좌절감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음이 힘들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위로를 받고 또 힘을 내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대학 학생상담센터에서 매년 하는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친구나 어머니와 많이 상의한다고 한다. 누구와 상의하고 위로를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누군가와 상의하고 위로받는 그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터놓을 사람이 없다면 학교의 학생상담센터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싶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받으면서 나아가야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가능성을 많이 보았다. 아니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알고 현명하게 생각할 줄 아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잘해 나갈 것임을 믿게 되었다. 다만 학생들이 만만하지 않은 세상에 휘둘려 너무 많이 휘청대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너무나 당연한 몇 가지를 제시해 보았다. 더 팍팍해진 삶 속에, 더 치열해진 경쟁 속에 던져진 우리 학생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계당교양교욱원 전영옥 교수
제 725 호 [만평] 공부도 열심히 휴식도 적당히
[만평] 공부도 열심히 휴식도 적당히 김다엘 기자
제 725 호 [순간포착] ‘사랑해’ 한마디면 충분해
[순간포착] ‘사랑해’ 한마디면 충분해 거울은 사물의 상을 비추어 보는 용도의 광학 도구이다. 자기 전, 고운 피부를 위해 로션을 바르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말끔히 세수를 하고 중요한 날에는 꽃단장을 하기 위해 거울을 주로 쓰곤 한다. 사실 그 이외의 용도는 그리 많지가 않을 뿐더러 잘 쓰지 않기 마련이다. 나를 가꾸기 위할 때가 아니고서는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겉모습을 가꾸기 위해 거울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거울은 이중적인 면이 있다. 화장을 하고 예쁨이라는 요소를 얼굴에 덧씌운다는 장점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와서 화장을 지워내고 다시 본래의 민낯으로 돌아오고 평소의 내 얼굴, 성격,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치부까지 전부 보이게 되는 단점도 있다. 이것이 거울이 가진 앞과 뒤가 다른 모습이며 양날의 검이다. 그래서 화장이 잘되면 거울을 볼 때 행복하지만 민낯으로 거울을 볼 때는 전자와 항상 같은 감정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사람은 당연히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기 나름이고 겉모습에 집중하여 내면보다는 외면의 조건을 먼저 따지며 그 사람을 판단하기에 때로는 겉모습에 대한 사소한 말 한마디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와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거울로 인해 나의 단점이 드러나며 부각되는 것이 싫어 이를 피하고 감추기 위해 더 진하게 화장을 하고 본연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게 되면 언젠가는 후의 나의 민낯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이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나부터라도 나를 극복하고 이겨내어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다른 이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조차도 내 모습과 성격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아껴주는 법을 알면 자존감도 올라가게 되며 후에는 뜻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도 분명히 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리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용기 하나만 있다면 더 이상의 두려움도 없게 될 것이다. 사람인지라 그 누구나 다 같을 수가 없고 성격, 얼굴, 가치관 등의 모든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매력과 재능이 있는 것이다. 누구 하나 같은 이 없고 전부 다르기에 특별함이 있는 것이고 다름으로써 소중한 것이며 그렇기에 더욱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그것만큼 무지해 보이는 것도 없다. 나에게 부족한 면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나 자신을 극복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못나 보인다면 더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그리 멋지지 않은 내 모습이더라도 ‘오늘도 멋지다’는 한마디 하면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학우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시원 기자
제 725 호 [영화로 세상 보기] 전쟁 속 생존의 이야기, 영화 <덩케르크>
[영화로 세상 보기] 전쟁 속 생존의 이야기, 영화 <덩케르크> ▲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때는 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시기. 당시 서부전선에서는 독일군의 강력한 공세에 의해 결국 프랑스가 점령당하고 만다. 미처 철수하지 못한 프랑스 주둔 영국군은 본국인 영국으로 철수하기 위해 유일하게 점령되지 않은 해안지대인 "덩케르크"를 거점으로 철수하는 역사적 사실인 ‘덩케르크 철수작전(Dunkirk evacuation, Operation Dynamo)”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총 3개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사건을 다룬다. 육군 토미(핀 화이트헤드)가 덩케르크 해변에서 일주일 동안 고립되며 겪는 사건을 기준으로, 군인들의 귀환을 도울 민간 선박 모집에 자진해서 출항하는 도슨(마크 라이언스)의 하루, 상공에서 적군 폭격기를 격추하는 공군 파리어(톰 하디)의 한 시간이 교차한다. 영화는 바다 위, 민간 선박, 상공에서의 사건을 번갈아 보여주며 전쟁이 가지는 혼란스러움과 긴박함을 표현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연합군의 오판으로 인하여 일어난 굴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철수를 왜 하겠는가? 바로 전쟁 판도에서 불리해졌기 때문에 철수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전이 있었기에 영국군은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영국 국민들의 사기도 높아질 수 있었다. 오히려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영국군의 전사자가 실제 역사보다 2배로 늘어났을 것이고, 영국은 완전히 몰락했을 것이다. 전쟁에서의 후퇴란 일반적으로 굴욕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쟁 판도에서 불리해졌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퇴는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불가피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병력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고 보존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있는 것은 살아야 한다는 ‘인간 생존에 대한 본능’이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데 영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 전쟁영화라면 흔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같은 처참한 스펙터클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덩케르크”에는 독일군이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유혈이 낭자하는 잔혹한 전장 묘사 또한 없다. 전쟁 속에서의 동료를 위한 희생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강조할 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던져진 인간과 생존 욕구에 대한 처절한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내밀하고 섬세하게 그린 심리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의지를 클로즈업한 반면 전쟁의 풍경은 가장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듯 조망한 것이 이 영화가 다른 전쟁 영화와 다른 지점이다. 전쟁보다는 전쟁 속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속에서도 인간성을 놓치지 않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장원준 기자
제 725 호 [책으로 세상 읽기] 완벽은 존재하는가?, 책 <완벽에 대한 반론>
[책으로 세상 읽기] 완벽은 존재하는가?, 책 <완벽에 대한 반론> ▲ 완벽에 대한 반론 책표지 (출처: https://jhoons.tistory.com/85) ‘완벽’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완벽’이란 무엇인가. 이따금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 완벽함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완벽에 대해서 생명공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책이다. 우리가 완벽을 지향하기 위해 인체를, 유전자를, 태아를, 향후 미래세대를 개조하고 움직이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타당한가? 왜 이 모든 인위적인 행위는 노력으로 치부 받지 못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인가에 대해서 꼬리를 물 듯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인체공학, 생명공학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철학을 비롯한 인류의 행보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 읽어봄 직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완벽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 의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생명공학적인 윤리 문제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다. 태아의 생명 결정권, 어디까지를 생명,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등등 아직 의견이 분분한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세계를 생명공학이 바꾸고 있는 시대의 중심에서 우리는 새로운 윤리를 다시 고안해야 한다. 과거의 윤리가 과연 오늘날의, 미래를 설명하고 중심이 되어 줄 수 있는가. 우리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윤리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인간 자체의 변화를 지향할 수 있는 생명공학, 그 양날의 칼이 과연 어디를 지향해야 할지,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곽민진 기자
제 724 호 즐거운 추석
즐거운 추석 김다엘 기자
제 724 호 [순간포착!] 나의 가을도 그러한가요?
[순간포착!] 나의 가을도 그러한가요? 계절이란 무척이나 신기한 것이다. 따뜻함, 차가움, 선선함, 쨍함 등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전장에서 사라진 말이 그 길을 알고 다시 본래 주인에게 돌아오듯이 적절한 시기가 오면 자신의 때를 알듯이 한결같이 돌아오니 말이다. 또한 추석이 가까워질 때면 바람이 불고 냉랭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하는 걸 보면 우리 조상들도 지금의 과학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서 어떻게 이리도 정확한 24절기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번 절기를 보며 그 시기를 짐작하고 초복이 다가오면 삼계탕을 끓여 먹고 설이 다가오면 세뱃돈을 준비하며 추석이 다가오면 갖은 음식들과 송편을 빚을 준비를 한다. 이제 정말 가을이 왔나 보다. 아침부터 시작된 선선한 공기가 밤까지 계속 이어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라고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단풍의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흔히 ‘가을 타나봐’, ‘사색에 잠겨본다’ 등의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기도 하는 가을은 농부에게 중요한 계절로, 추수(가을걷이)라 하여 한 해의 농사의 결과물을 수확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외로움, 사색, 쓸쓸함, 고독 등 감성의 깊이를 자극하고 그 깊이가 절정에 다다르는 계절이 아닐까 싶다. 가을만 돌아오면 괜스레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실로 붙여 막아 놓았던 구멍 하나가 풀어지면서 그동안 잘 버텨왔던 마음을 헤집어 놓고는 한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감정들이 쉴새 없이 몰아치는 것이다. 감정들을 주체하지도 조절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쌓여만 가고, 마침내 쌓인 감정들은 한차례에 걸쳐 폭발하여 큰 구멍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올 즈음에 다시 그 구멍을 실로 꿰매고는 한다. 구멍이 다시 날 때에는 자신을 한탄하며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것 밖에 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고 온갖 철학적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 한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허공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이 공허하고 아파질 때는 치유의 수단을 찾아야 한다. 운동으로 땀을 흘려가며 기억의 한 켠을 잊어 보는 것도, 책이나 시집을 읽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것도, 그 무엇이 되어도 좋다. 아픈 곳을 그대로 두면 상처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 마음을 치료하며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한창 마음 한 구석이 심란할 즈음 시험 기간도 겹치고 하여 학우들의 걱정도 깊어질 것이지만 두려운 마음을 이겨낼 방법이 있다면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학우들도 곁에 있어줄 누군가, 다정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그 사람 등 나의 가을을 무탈히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부디 추억에 남을 수 있는 가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시원 기자
제 724 호 [책으로 세상 읽기] 비판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 책 <데미안>
[책으로 세상 읽기] 비판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 책 <데미안> ▲데미안/ 민음사 책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깨끗한 집안에서 그야말로 ‘선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집의 하녀들과 장인들이 집 밖에는 부랑자나 강도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는 ‘악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이 두 세계에서 강력한 대립을 느끼기 시작한다. 데미안과 비판적 사고 어느 날, 마을의 한 과수원에서 사과를 도둑맞았다는 사건이 입소문을 타고 돌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기 위해서 그 사과를 본인이 훔쳤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선의 세계’에 살던 그가 처음으로 ‘악의 세계’에 발을 담근 때였다. 그의 친구이자 큰 덩치를 가지고 있던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뒤로 불러 그를 과수원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싱클레어는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크로머의 말에 따르기 시작한다. 그 뒤로 싱클레어의 삶은 매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때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이 바로 “데미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디 기댈 곳 하나 없었던 싱클레어는 크로머보다 힘도 세 보이고, 행동이 믿음직했던 데미안에게 본인의 잘못을 이실직고하는데, 어째서인지 크로머는 그 뒤로 싱클레어를 괴롭히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꼈지만, 또 다른 마음 한편에서는 알 수 없는 경탄이 떠오르곤 했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중간 내용이다. 후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거쳐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에바 부인을 만나며 성장해 나간다. 결국 항상 남들을 통해 답을 찾던 싱클레어는 본인의 내면에서 “데미안”을 찾게 되고, 이로써 그는 더 이상 데미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 “데미안”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비판적 사고”다. 줄거리의 중간에는 데미안이 성경 속 이야기를 본인의 생각대로 재해석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충격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소설 속에는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피하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데미안의 특징을 따져본다면 아마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협박하는 내용에서 오히려 크로머의 약점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과수원 주인이 사과 도둑의 범인을 찾고 있지 않았다든지, 싱클레어를 협박해 받아냈던 돈이 알고 보니 고발 보상금보다 터무니 없이 많았다든지 말이다. 결국에는, 싱클레어 본인이 노력했다면 스스로 크로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상황들이 데미안은 가지고 있었던 비판적 사고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돌아보며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는 1877년 독일에서 개신교 선교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부모님들의 교육 방식은 엄격하기 그지없었고, 헤르만 헤세는 그 부모님들로부터 종교적 신념을 강요당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선교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방황의 삶을 이어 나갔다. 이후 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삶과 전쟁의 의미, 전쟁 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사려 깊은 생각은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발현되곤 했지만, 당시 나치즘을 표방했던 독일에게 유대인을 옹호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조국인 독일을 져버리고 스위스로 망명, 1962년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다양한 심리 치료를 동반했다. 특히 동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싯다르타>에서 불교적 색채를 강력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헤세의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기에, 일종의 정신 질환 치료 과정에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 볼 만하다. 이러한 정신적인 질환을 이유로 하는지, 헤르만 헤세의 문체가 ‘다소 난잡하고 쓸데없이 이상적이다’라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이 맥락에서, <데미안> 또한 전쟁의 참상과 그 이후의 시대를 글 속에 반영하는 것에 있어서 같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의 1946년 작인 <유리알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어지러웠던 판국을 이해하는 것에 헤세의 소설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하다고 가히 인정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세계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인간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내면의 길’이라는 생각에 집중했다. 세계 대전의 피로함을 느꼈던 그는 선의 세계-악의 세계로 나누어진 이분법적인 사고를 철저히 파괴하고, 그 누구도 선인이 아니고 또한 악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노력했다. 다시 말해, 전쟁의 참상을 겪고도 그것이 필수적이었고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주장하는 당시 유럽 사회의 이기적인 각국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며, 이는 비단 나치 독일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헤세는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데미안”이라는 비판적 잣대를 이용하여 스스로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가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이 데미안과 본인이 하나가 될수록 탄탄한 내면이 구축되고 이는 곧 사회로 확장된다는 사고 과정을 거쳤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선의 세계-악의 세계가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며, 그 속에서 기존에 정립되어있던 둘 사이의 경계가 붕괴하고 신시대로서의 사회가 정립되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오늘날까지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는 이 국제적인 아젠다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세계시민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상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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