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9 호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 카트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 <카트> <영화 카트> /2014 대형 할인점 '더 마트'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해고통지를 받게 된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던 선희(염정아)를 비롯한 많은 직원은 이를 부당해고로 여기며 노조를 결성한다. 이들은 다시 복직하기 위해 파업을 결심하고 마트를 점거하지만, 노조와 회사의 협상은 계속해서 결렬되고 회사 측의 경찰, 조직폭력배 등의 동원으로 인해 파업은 계속 진행된다. 이와 동시에 선희(염정아)의 고등학생 아들 태영(도경수)는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임금 체불을 당한다. <카트>는 2000년대 초 있었던 '까르푸 파업', '홈에버 파업'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이 덕분에 영화는 비정규직 문제, 노동 현장의 열악한 환경, 임금 체불 등 노동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회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카트>는 주류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몰입도를 높였다. 이 덕에 <카트>는 201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각본상, 영화 최우수연기상을 받는 등 여러 전문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일한 만큼 제대로 주세요” 극 중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태영(도경수)의 대사다. 이 대사는 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2014년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벌써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지난 5월 1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정된 세계 노동절은 133주년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노동 현장의 열악, 노조 불이익 등 노동권 침해에 대한 기사는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28.3%로 OECD 평균인 11.8%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또한 통계청은 22년 8월 기준 약 2,000여만의 임금 근로자 중 37.5%인 815.6만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발표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사회적 노력이 필수이다. 아직 대학생인 우리에게 노동권과 관련된 문제는 먼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삶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 노동절 133주년을 맞이한 2023년 5월, <카트>를 통해 노동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김현지 수습기자
제 719 호 [책으로 세상읽기] 감정 어휘, 모호한 감정을 선명하게 밝혀 내 삶을 살게 해주는 말 공부
<감정어휘> 모호한 감정을 선명하게 밝혀 내 삶을 살게 해주는 말 공부 책을 읽으려고 열심히 골라보지만 두꺼운 책이나 흐름이 중요한 책들이 많아 책 읽기를 미루었던 적이 있는가? 경제나 시사 관련된 책들은 내용이 무거워 읽기가 망설여지고 소설이나 만화보단 지식을 쌓고 싶다면 감정과 관련된 언어를 소개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출처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1353750) 『감정 어휘』는 인생의 나침반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감정을 구분하고 적절한 어휘를 붙이는 것에 관한 책이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1장에서는 감정에 대한 개요를 소개하는데 저자는 감정을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자극에 대해 마음이 일으키는 반응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꽃에 비유했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씨앗도 없다고 글을 시작하며 우리의 꿈과 희망, 말과 행동, 계획과 목표, 관계를 비롯해 삶에서 중요한 대부분이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1장을 마무리했다. 2장에서는 온도와 관련된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심장이 뜨겁거나 따뜻하거나 차가워지는 것에 대한 감정은 ’감각어‘이며 크게 ‘뜨겁다’와 ‘차갑다’로 구분하고 온도를 좌우하는 요소들을 소개하며 감정을 대해 설명한다. 3장에서는 통각과 관련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에 대해 얘기하면서 묵묵히 견디는 것만이 최선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아픔을 세밀하게 표현한다면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또한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이라고 말하며 통각에 관련된 감정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촉감과 관련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부드러움과 거친 정도에 따라 나뉘는 감정을 얘기하고 마음결의 상태가 내가 머무는 곳을 이상향과 지옥으로 만든다고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빛과 관련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밝음과 어두움에 따라 느끼는 감정을 소개하며 어두움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으며 스스로 빛이 되어 주위를 환하게 밝힐 수도 있다고 하였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으며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고 했다. 기쁨, 절망, 슬픔 모든 방문객을 환영하고 맞아들이라고 얘기하며 책을 마무리지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감정 어휘는 ’옹이‘였다. 옹이란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얼핏 보면 질투와 비슷하지만 질투와 다른 부러움의 감정을 설명하는 감정 어휘이다. 이 책에는 1000개가 넘는 감정 어휘들이 설명되어 있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감정 어휘를 배우는 것은 어떨까. 이은민 수습기자
제 719 호 [사설] 챗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챗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에릭 슈밋 전 구글 CEO(최고경영자), 대니얼 허트로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슈워츠먼컴퓨팅대 초대 학장이 정기적으로 만나 AI를 주제로 사색하고 대화를 나눴다. 최근 출간된 'AI 이후의 세계'는 대전환이 확실시되는 AI 시대에 대한 이들의 통찰을 담은 책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드는 생성형 AI 챗GPT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대학가도 적극적인 활용방안 찾기에 나섰다. 챗GPT는 소설, 시, 음악, 논문 창작은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로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챗GPT가 단 30시간 만에 쓴 책과 전문가와 챗GPT가 함께 쓴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4월 19일 인하대 생명공학과 나노바이오공학개론 중간고사 시험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노트북을 꺼내 챗GPT를 사용하여 궁금한 내용을 질문했다. 챗GPT는 잠깐의 로딩 후 답변을 산출했다. 학생은 자신이 알던 지식을 더해 새롭게 창조한 답을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책을 찾아가며 답을 작성하는 과거의 '오픈북' 시험과는 다른 광경이었다. 다만 챗GPT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쓰는 건 금지됐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그동안 답을 찾는 연습만 했는데 챗GPT를 쓰면서 질문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챗GPT를 완벽히 믿기는 어려워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로 활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챗GPT의 방대한 가능성에 몇몇 대학교들이 챗GPT를 교육 과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인천대는 학생들이 챗GPT로 부정행위를 하는 등 악용사례를 막기 위해 챗GPT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연세대와 고려대도 챗GPT 학습 활용 방침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연세대는 챗GPT를 이용할 때 결과를 학생이 직접 검토하라는 지침도 함께 내렸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서도 챗GPT 활용을 허용한 상황에서 학계의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질문하느냐('how to ask')가 중요한 시대로 학생들의 역할은 AI를 활용하고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 행정부처, 기업도 직면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5월 8일 전국 행정기관 300곳에 '챗GPT 활용방법 및 주의사항 안내서'를 배포했다. 챗GPT의 문제점인 저작권, 개인정보 유출, 답변의 신뢰성, 윤리성, 편향성에 대해 상세히 제시했다. 생성형 AI의 한계로 거짓된 정보를 생성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챗GPT가 내놓은 답변은 사실여부 검증과 확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도 ‘챗GPT’에 대한 사내 사용지침을 마련했다. 통신 3사는 공통적으로 업무 효율 증대에 챗GPT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면서, 보안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KT는 챗GPT를 활용할 때 법규와 회사 규정을 준수하며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개인적인 사용은 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 업무, 기밀 등은 챗GPT에 입력을 금지했다. LG유플러스는 상품, 요금제, 멤버십 혜택 등 대외에 알려진 정보나 익명화된 데이터는 사용해도 되지만, 사내 정책, 회의록 등 회사 기밀정보, 연구정보, 고객 개인정보 등은 사용 금지했다. 또한 챗GPT를 통해 생성되는 콘텐츠가 저작권 혹은 개인정보를 포함 여부를 법적 검토 받도록 했다. SK텔레콤은 사내 업무용 챗GPT 전용 서비스를 개발해 배포했다. 하지만 보안 이유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챗GPT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자사 전용 챗GPT 도입에 속도를 내는 대신 사용제한 등의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거대 AI에 대한 이해와 접목이 ‘게임 체인저(시장 판도를 바꾸는 기업)’의 요소지만 AI 거버넌스(경영체제)를 수립해 위험 가능성을 줄이는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AI 이후의 세계' 저자들은 향후 AI를 파트너 삼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엄청난 격차가 날 것이라고 예상하며 15세기 인쇄 혁명 이후 인간은 가장 큰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대비도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I 기술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다.
제 719 호 [순간포착]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 사진 속 장소는 성수동에 위치한 서울숲 가족마당의 한 곳이다. 촬영 중 우연히 시야에 들어온 비눗방울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바람에 몸을 맡겨 휘날리는 비눗방울은 자유로운 영혼 같았으며 그에 몸을 맡겨 신나 하는 아이들 또한 눈동자 속 즐거움이 훤하였다. 성인과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다시금 서울숲을 찾아가니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내 자신이 동심으로 돌아가 비눗방울의 움직임에 발맞춰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느꼈다. 대학교라는 캠퍼스의 낭만만을 바라보고 학창시절부터 피땀 흘려가며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잠깐의 숨을 불어넣어 주는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더불어 사진 속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비눗방울 인지, 사람인지, 사진 밖의 무엇인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점도 있어 시각적 재미를 더하는 듯하다. 보통 학생의 시각에서 보자면 논다는 것은 신분에 맞지 않고 공부에 방해가 되며 소중한 시간을 버린다고 하여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 노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점을 가볍게 여기기만 한다면 친구와 잠깐 만나 수다를 떠는 것부터 시작해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까지 사치이며 결국 그 끝에서는 시간의 개념 자체를 사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 시간은 개개인의 열정과 애정이 담긴 것들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때문에 여가 시간을 갖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며 열차가 정류장을 하나씩 거쳐 가며 천천히 길을 밟아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앞과 뒤를 돌아보며 한 발씩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슴우들도 한 번씩은 잠시 쉬어 가기도 하고 취미나 여가 생활도 즐겨보며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며 보듬어 줄 수 있는 기량을 가진 학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시원 기자
제 718 호 [기자석] 편견없는 시야
편견없는 시야 세상을 바라볼 때 좀 더 창의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편견이라는 말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 또는 생각'을 의미하며 비슷한 말로는 고정관념이 있다. 많고 많은 단어 중 굳이 편견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은 고정관념, 선입견 등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인지의 영역이며, 차별은 직접 드러나는 행동이지만, 편견은 어떤 것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것을 볼 때조차 편견으로 바라볼까? 우리가 편견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보통 나쁘고, 논리적이지 못한 견해에 '편견이 있다'라고 한다. 우리는 왜 편견을 가질까? 단순히 경험에 의한 사고방식, 성격, 기타 등등 사람의 특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며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편견에 대한 기원을 찾기 위해 많은 학자가 노력하는 등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 양상은 너무 다양하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쁠까? 창의적인 상상을 하는 데 고정관념의 역할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반전을 일으키려면 그만한 정해진 것이 확고할수록 효과가 커진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의 역할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고정관념 없이 세상을 볼 때 더 창의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편견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거나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것처럼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한다. 물론 이러한 말은 질리도록 들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편견을 줄이려면 내 세상을 넓히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인정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인식을 넓혀간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게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요?" 김수정(2012)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보고자 대상을 분석하고 그 결과 중 가장 익숙한 것을 본인이 아는 것에 비교하거나 비유하듯이 살펴본다. 또 너무 많은 대상이 있어도 그 속에서 비슷한 것을 묶어내 공통적인 특성으로 생각하고, 너무 많은 특징이 있어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그대로 기억 속에 저장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낼 땐 아마 공통적이거나,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수많은 경우에서 우리는 단일한 사건을 '유형화'하고, 친숙한 범주 속에 넣은 후 그에 따라 행동한다." 고든 올포트 [편견]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MBTI도 일반화와 편견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본인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태도나 습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남이 재단한 특성에 따라 본인의 모습을 맞춘다. 어떤 MBTI 유형은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다. '취미는 취미일 뿐'이라고 말해도 사실 이미 스스로 조금씩 만들어낸 프레임에 남들을 맞추거나 본인이 맞추어간다. MBTI의 문제만이 아니라 직업 인식, 학벌, 취미나 성향까지 어떤 것이든 편견과 일반화는 같이 움직인다. 편견은 인식하기 어렵다. 편견에 대해 말하면서도 편견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미 우리는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등 SNS로 집단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공동체가 너무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말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편협함에 대해 인지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듯이 스스로의 생각을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매체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입하기 때문에 매 순간에도 이것이 온전한 본인의 생각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본인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하냐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 개인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는 연습을 통해 본인 스스로 일련의 과정이나 사고회로를 만들어낸다면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본인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컴퓨팅 사고방식도 아마 이러한 맥락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도 결국 하나의 수단이라 끊임없이 연습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김다엘 기자
제 718 호 이상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상한 사람들"
▲최인호 / 열림원 / 2006 (출처: yes 24)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로 첫 문장을 시작하며 3명의 이상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이야기에선 집을 얻기 위해 평생을 구걸하며 살아온 사람이 결국 집을 잃고 남은 화자가 그 사람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시대는 동냥이 있고 굴뚝이 존재하는 오래전에서부터 시작하며 재개발의 바람이 부는 현대로까지 이어진다. 그의 부모도 이상하고 본인도 이상하나 이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을 땐 모든 것이 이상했다. 사람은 죽어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작은 집을 얻게 된다는데, 그렇다면 첫번째 주인공이 집을 위해 본인의 인생을 내다 버린 것은 이상한 것인가? 어릴 땐 세상이 자기 집이라 생각하며 나무 위에서 자는 것이 좋았으나 아버지마저 죽은 후엔 집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건다. 나는 여기서 사회적인 복지와 노숙인에 대한 인식의 문제보다도 가장 와닿았던 것은 평생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이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이 지금 집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상한 이야기 ‘포플러나무’는 어릴 때 높이 뛰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식과 아내를 잃고 무기력해지며 결국 어떤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모두 그를 보고 이상하다고 하였는데 화자가 늙어버린 그에게 높이 뛰기를 계속 권유하였고 그는 높이 뛰다 다리가 부러져버렸다. 그 이후 포플러나무를 심는다. 화자가 이유에 대해 묻고, 늙은 할아버지는 언젠가 계속 높이 뛰기를 연습하면 다시 잘 뛸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하며 무릎보다도 작은 포플러나무 위를 뛰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화자가 다 자라 청년이 되어서 다시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할아버지는 굽은 등과 다 빠진 이만 남은 상태였음에도 단번에 높이 자란 나무 위로 뛰어올라 신발만 남기고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초반의 주인공은 우울하고 지친 사람이었다면 이후의 주인공은 목표만을 바라보며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가 부러진 사건 이후로 본인의 직접적인 상태를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발전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만약 본인이 막혀있거나 슬럼프가 온 것 같다면 실패나 직접적인 자기 상태 점검을 하여 본인을 돌아보고 작은 목표를 세워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이야기 ‘침묵은 금이다’는 안정적인 직장,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인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어느 순간 갑자기 말이 싫어졌다며 온종일 침묵을 유지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처음엔 다들 단순한 도전이나 변덕으로 생각했지만, 기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가족들과도 멀어지고 회사에서도 해고당하며 인생이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1년이나 넘게 말을 하지 않은 나머지 정말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부분이다. 주인공은 말뿐인 대화는 진심 어린 대화가 아니라 생각해 침묵을 유지했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으론, 말을 잘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허례허식이라도 단순한 인사치레가 모르는 체하는 침묵보다 낫다는 것이다. 말은 신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작가의 말을 보면 바다거북이 알을 낳기 위해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알에서 깨어난 아기 거북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거북이는 집이 있는 존재이며(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알을 낳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본인의 말하는 능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침묵은 금이다) 바다를 향해 도전하는 아기 거북은 역경이 있어도 결국 뛰어넘어 목표에 도달하는 할아버지(포플러나무)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2006년 작품이 지금 나오는 책들과 문장이 지금의 베스트셀러의 문장과 미묘하게 달랐지만 오히려 반가웠다. 세련된 문장도 좋지만, 옛 작가들만의 따뜻하고 투박한 듯 부드러운 문장은 어릴 적 읽었던 교과서의 느낌이 났다. 단편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시간 날 때 가볍게 읽기에 매우 좋다. 마음의 양식을 주고 사라지는 느낌을 받아 소개하였다. 김다엘 기자
제 718 호 [만평] 다함께 동행
[만평] 다함께 동행_김다엘 기자
제 718 호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 2022 18세기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바꾼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이야기! 영화 제목인 Delicious는 <매우 맛있는, 매우 향긋한, (감각적으로) 매우 기분 좋은>이란 사전적인 의미를 갖는다. 영화 속에서는 'Delicious'가 주인공이 개발한 감자를 베이스로 한 디저트 이름이기도 한데, 이 디저트를 맛본 하녀가 감탄으로 내뱉은 '딜리셔스'가 이 음식의 이름이 되어버렸고,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이 차린 식당의 이름이 된다. 혁명 바로 직전 1789년의 프랑스에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요리하던 셰프 망스롱, 그가 모시던 샹포르 공작의 식탁 위에 새롭게 개발한 메뉴를 선보이자 바로 해고된다. 그 이후 요리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내려놓고 평범한 주막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중,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루이즈'라는 한 여성이 찾아온다. 영화의 배경인 18세기에는 귀족의 특권이 엄청났던 시기이다. 그래서 요리사의 음식을 먹고 음미하는 것 자체가 서민들은 누릴 수 없는 귀족의 특권이었다. 그렇게 귀족의 어깨는 잔뜩 솟아있었고 셰프마저 기량을 펼칠 수 없는 시대였다. 현대에는 레스토랑에 간다면 메뉴에 있는 음식 중 하나를 골라 먹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주 예전에는 귀족이 원하는 음식을 셰프가 요리해야 하는 문화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딜리셔스’라는 제목부터 왠지 맛있는 음식이 잔뜩 등장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진 않다. 영화는 귀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 요리사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그 첫 시도의 레스토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포커스를 더욱 맞추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어렵사리 열게 된 레스토랑은 망스롱의 훌륭한 요리 솜씨 덕분에 입소문까지 타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다. 투박한 장소에서 하나씩 정리되며 아름다운 가게를 이루는 그 모습이, 그리고 보기만 해도 유기농 티가 팍팍 나는 요리들이 영화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또한,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서민들과 귀족들 사이에 고조된 감정과 긴장감도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다. 18세기 인물들의 복식을 비롯해 식기류, 정원, 자연경관과 같은 프랑스의 시골 풍경과 음식 등의 볼거리가 매우 풍부해서 좋은 영화이다. 음식과 관련된 질투와 권력으로 인한 복수도 볼 수 있는 등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 마지막에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었다는 내용을 보여주면서 귀족들의 풍자가 더욱 희화화되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전의 프랑스 귀족 문화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귀족 문화를 소개하면서도 적당히 그들의 세계를 꼬집고 희화화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요리 과정과 비주얼을 보며 어떻게 프렌치 레스토랑이 시작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주어 볼거리가 풍부한 힐링 영화를 보고 싶다면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소영 기자
제 718 호 유한한 영원
사람은 평생 삶을 영유하지 못한다. 진시황이 평생을 찾아 헤맨 불로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인간의 영원한 삶을 가능케 하는 것도 없으며, 인간 본연의 성질 또한 영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거나, 사랑하는 사람 또는 친한 친구와의 이별을 겪다 보면 자신이 홀로 살아가는 것 같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아가는 이유를 잊어버리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특히나 정의 전부를 다 내어주고 진심으로 대한 이와의 이별은 절대 잊지 못할 상처와 슬픔으로 남을 것이고 이 이별만큼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점이 있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지 못하므로 내 곁에 평생을 머물러 있지도 못하는 것이며 유한한 생명을 가졌기에 온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막연히 속상해하고 슬픔에 빠진 나날을 보내지만 말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 만큼, 믿어준 만큼, 소중했던 만큼 그에 대한 인연으로 말끔히 보내주는 게 예의이며 자신한테도 더 이상의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있기에 보내주는 것이므로 그리움의 시간 속에서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는 것은 어떨까? 양시원 기자
제 717 호 [교수사설] 챗봇 시대, 우리의 소통력 문제
챗봇 시대, 우리의 소통력 문제 챗봇은 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여 질문에 답하는 대화형 인공지능의 하나이다. 규칙에 맞게 질문을 하면 썩 나쁘지 않은 정보를 꽤 괜찮은 문장으로 대답을 한다. 웬만한 보고서 하나는 거뜬히 써내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정보화 시대의 발전으로 얻은 성과물이 이 정도라고 하니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육자는 무슨 일을 하고, 또 학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굳이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챗봇이 척척 답을 내놓은 세상에서 교육자와 학생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한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에서 굳이 사고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육의 일차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사회에 잘 적응하며 맡은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그 구체적인 항목 중에 가장 먼저 원활한 의사소통력을 손꼽는다. 원활한 의사소통력이란 무엇일까?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었다. “소통력이 뭐예요?” 챗지피티는 이렇게 답했다. “소통력은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생각, 느낌, 의견을 듣고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통력은 일상적인 대화, 직장에서의 업무, 가족 관계,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상대방과의 원활한 대화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소통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물었다. “소통력을 기르는 방법이 뭐예요?” 챗지피티는 이 질문에 대해 주요한 방법이라며 여섯 가지 항목을 언급하였다. 항목과 설명까지 타당한 답을 내놓았는데, 항목만 정리하면 이렇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명확하게 표현하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대화하기, 듣기 연습하기, 비판적 사고 기르기, 갈등 해결 방법 익히기.”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질문을 하면서 ‘인공지능 활용하기’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챗지피티가 답한 소통력을 기르는 방법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항목을 위해 기존에 공개된 정보를 챗봇을 통해 활용할 수 있을 뿐, 나머지 항목은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었다. 이번에는 “소통력 향상에 인공지능이 어떤 도움을 줄까요?”라고 물었더니 자연어 처리 기술을 이용한 챗봇을 이용하여 답변을 제공받는 것, 음성 인식 기술을 이용하는 것, 자동 번역 기술을 이용하는 것, 감정 분석 기술을 이용하는 것 등의 답을 내놓았다. 이 모두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종류에 대한 것이고, 소통력 향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인식하여 내놓은 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글쓰기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글쓰기를 할 때 하는 일은 주제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 내용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하여 나의 논리를 세우고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더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주제와 관련된 기존의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확인하고자 할 때 챗봇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과정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보고서를 써주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과학의 이기를 잘 활용해도 되니, 이제 보고서 작성이나 글쓰기를 그다지 안 배워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오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회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회사에서 의사소통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통력은 면접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얼른 챗봇에게 물어보고 답을 할 참도 주지 않고,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잠시만요.’ 하면서 상대를 기다리게 할 참도 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활용하기 좋은 인공지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내가 부딪쳐야 한다. 혹시라도 보고서 작성법과 글쓰기 교육이 필요 없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 교육에서 ‘사고와 표현’이라는 의사소통력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는 것은 그 배움의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가 자라고 소통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며 글을 쓰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고를 넓히고,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더욱 섬세한 분별력을 기르며,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사고력이 길러진다. 그러한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나의 소통력은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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